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 제26왕조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26왕조를 성립시킨 '''[[네코 1세]]'''는 원래 [[사이스]]의 지방관으로, 원래는 파라오가 될 인물이 아니었으나, 기원전 671년 [[아시리아]]의 [[에사르하돈]]이 침입해 하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이집트의 새 파라오로 추대되었다. 하지만 기원전 664년 [[이집트 제25왕조]]의 [[타누타멘]]이 이집트를 탈환했고, 네코 1세는 전쟁 도중 사망했다. 후계자인 '''[[프삼티크 1세]]'''는 제26왕조의 첫 파라오로 여겨지는 인물로, 이집트를 빼앗기자 아시리아로 도주해, 아시리아 왕 [[아슈르바니팔]] 및 [[리디아]] 왕 [[기게스]]의 도움을 받아 기원전 656년 이집트를 재탈환하고 타누타멘을 몰아냈다. 이때 많은 건물이 파괴당하고 사람들이 살해당하거나 노예가 되었다. 이후 아시리아의 봉신국이 되어 별 탈 없이 지내다가, 기원전 626년 [[나보폴라사르]]가 신바빌로니아를 세우고,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의 [[니네베]]가 [[신바빌로니아]]에게 정복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기원전 610년에 사망했다. 2대 파라오인 '''[[네코 2세]]'''는 기원전 609년 멸망 위기에 놓인 아시리아를 돕기 위해 시리아로 출병했고, 이때 이집트를 가로막은 [[유다 왕국]]의 [[요시야]] 왕을 죽이는 등의 공을 세웠으나 결국 하란 공성전에서 바빌로니아에게 패배하고 돌아갔다. 기원전 606년 시리아를 또 공격했으나 [[네부카드네자르 2세]]에게 패하면서 다시 돌아갔다. 이후 이집트는 내치에 힘썼는데, [[수에즈 운하]]처럼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려는 시도도 있었고, [[페니키아]]인들을 고용해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돌도록 지시했던 일도 있었다. 기원전 595년에는 3대 파라오 '''[[프삼티크 2세]]'''가 즉위했다. 그는 [[쿠시 왕국]]의 도전을 짓밟고 [[나파타(도시)|나파타]]를 파괴했다. 또한 많은 신전과 오벨리스크들이 건축되었다. 기원전 589년 즉위한 4대 파라오 '''[[와히브레]]'''는 국제정세에 무지하여, [[유다 왕국]]이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무시하다가 결국 기원전 586년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에 정복당하고 [[바빌론 유수]]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고, 완충지대가 사라지며 바빌로니아의 위협이 국경지대까지 닥쳐오게 만들었다. 보다못한 '''[[아흐모세 2세]]'''가 기원전 570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와히브레를 몰아내고 5대 파라오로 즉위했다. 와히브레는 바빌로니아로 도주해, 아흐모세를 몰아내기 위해 침입해 왔으나 패배했다. 이후 이집트는 아흐모세(아마시스)의 치하에서 번영을 누렸다. 그러나 얼마 후 국제정세는 한 번 더 흔들렸다. 기원전 550년 [[아케메네스 왕조]]의 [[키루스 2세]]가 안샨 왕국을 페르시아 제국으로 발전시킨 후 기원전 539년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다. 이 때 아흐모세 2세는 페르시아에 대해 외교적인 실수를 저질렀고, 페르시아의 분노를 샀다. 기원전 526년 아흐모세 2세가 사망하고 마지막 파라오 '''[[프삼티크 3세]]'''가 즉위했다. 이집트와 페르시아 간의 긴장 상태는 결국 전쟁으로 번졌고, [[캄비세스 2세]]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이 이집트를 정복하며 제26왕조는 멸망했다. 프삼티크 3세는 포로로 끌려갔으며, 캄비세스 2세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들켜 사망했다. [[분류:국가(기원전)]][[분류:고대 이집트]][[분류:기원전 6세기 멸망]][[분류:이집트-이라크 관계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